그레이스케일은 비트코인이 단기적으로 금이 아닌 미국 소프트웨어·AI 성장주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성장주형 위험자산’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비트마인의 88억 달러 규모 이더리움 장기 베팅, 블랙록 BUIDL의 유니스왑 상장, 폴리마켓의 미국 규제 소송 등으로 크립토가 전통 금융·규제 프레임 안에 깊이 편입되고 있다고 전했다.
88억 달러 이더·21억 달러 토큰화 펀드… 비트코인 ‘디지털 금’ 뒤로하고 위험자산 동조화 가속 / TokenPost.ai
비트코인(BTC)이 ‘디지털 금’이 아니라 미국 성장주, 특히 소프트웨어·테크주와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인공지능(AI) 수혜 기대와 불확실성이 교차하는 성장주 시장과 크립토 시장의 변동성이 한 몸처럼 움직이면서, 비트코인의 정체성 논쟁이 다시 불붙는 모양새다.
전통 금융권 자금이 상장지수펀드(ETF)와 각종 규제권 내 투자수단을 통해 비트코인으로 유입된 이후, 비트코인은 위험자산과 보조를 맞추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최근 AI에 대한 우려로 미국 소프트웨어주가 조정을 받자,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도 동시에 급락하며 상관관계를 재확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흐름을 토대로 그레이스케일(Grayscale)은 비트코인의 ‘디지털 금’ 서사가 단기적으로는 후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레이스케일 “비트코인, 당분간은 디지털 금보다 성장주에 가깝다”
그레이스케일 리서치 책임자 잭 팬들(Zach Pandl)은 보고서에서 “비트코인은 고정 공급량과 중앙은행 독립성 덕분에 장기적으로는 가치 저장 수단으로 본다”면서도 “단기 가격 움직임만 놓고 보면 고성장 주식과 매우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비트코인과 미국 소프트웨어 섹터 간 상관관계가 뚜렷하게 강화됐고, 특히 최근 AI가 소프트웨어 업계를 재편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양 시장의 동반 조정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그레이스케일 분석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AI 도입 비용, 비즈니스 모델 변경, 마진 압박 우려로 매도세를 겪는 구간에서 비트코인도 비슷한 시기에 약세를 보였다. 비트코인이 더 이상 ‘주식과 별개로 움직이는 헤지 자산’이 아니라, 성장 스토리에 민감한 위험자산 군에 편입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전통 자산과의 동조화는 기관 유입이 그만큼 늘었다는 방증인 동시에, 위기 국면에서 안전자산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레이스케일은 “장기 서사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단기 트레이딩 관점에서 비트코인을 ‘성장주형 위험자산’으로 이해하는 게 현실에 가깝다”고 정리했다.
비트마인, 폭락장 속 이더리움 4만 613 ETH 추가 매수
한편 이더리움(ETH) 국고 운용사 비트마인 이머전 테크놀로지스(BitMine Immersion Technologies)는 최근 시장 급락 구간에서 4만 613 ETH를 추가 매수하며 장기 베팅을 강화했다. 이로써 비트마인의 이더리움 보유량은 총 432만 6,000 ETH를 넘어섰고, 현재 시세 기준 약 88억 달러(약 1조 2,699억 원) 규모에 이른다.
온체인 데이터 서비스 드롭스탭(DropsTab)에 따르면 비트마인은 이더리움 포지션에서 약 81억 달러(약 1조 1,698억 원) 수준의 평가손실을 기록 중인 것으로 추산된다. 매입 단가와 현 시세의 괴리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비트마인 이사회 의장 톰 리(Tom Lee)는 “우리 전략은 이더리움의 장기 궤적을 추적하고, 향후 회복 국면에서 잠재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맞춰져 있다”고 강조했다.
비트마인 주가는 최근 수개월간 급락해 주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지만, 회사 측은 이더리움 중심 포트폴리오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비트마인의 암호화폐·현금 등 전체 자산은 약 100억 달러(약 14조 4,250억 원) 수준으로 평가된다. 단기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이더리움 장기 사이클에 베팅하는 대표적 기관 사례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블랙록, 유니스왑에 BUIDL 상장…UNI 매수까지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이 탈중앙금융(디파이) 시장 공략을 한층 가속화하고 있다. 블랙록은 토큰화 머니마켓펀드 ‘USD 인스티튜셔널 디지털 리퀴디티 펀드(BUIDL)’를 디파이 대표 탈중앙 거래소 유니스왑(Uniswap)에 상장해, 기관투자자가 온체인에서 토큰화 국채 상품을 직접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BUIDL은 현재 21억 달러(약 3조 304억 원) 이상이 운용되는 최대 규모 토큰화 머니마켓펀드다. 이 펀드는 이더리움(ETH), 솔라나(SOL), 아발란체(AVAX) 등 복수의 블록체인에 발행돼 있으며, 기초 자산으로 보유한 미국 국채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토큰 보유자에게 배분한다. 지난해 12월에는 누적 분배금이 1억 달러(약 1,442억 원)를 돌파하며, 실물채권 수익을 온체인으로 옮겨오는 대표 사례로 부상했다.
블랙록은 이번 유니스왑 연동과 함께 유니스왑 거버넌스 토큰인 유니(UNI)도 직접 매수하고 있다. 화이트리스트에 오른 기관투자자는 BUIDL 토큰을 유니스왑에서 자유롭게 스왑하거나 유동성 풀에 예치할 수 있어, 전통 자금과 디파이 유동성이 한 단계 더 밀접하게 연결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블랙록의 행보는 ‘자산 토큰화(tokenization)’가 단순 실험을 넘어 본격적인 시장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읽힌다.
폴리마켓, 매사추세츠 상대로 연방 소송…예측시장 규제 정면 돌파
탈중앙 예측시장 프로토콜 폴리마켓(Polymarket)은 매사추세츠주 당국의 규제 시도에 맞서 연방 법원에 선제 소송을 제기했다. 주 정부가 자사의 이벤트 기반 거래 서비스를 제한하거나 폐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아예 주(州) 차원의 집행 권한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폴리마켓 최고법률책임자 닐 쿠마르(Neal Kumar)는 이번 소송이 “연방 차원에서 관할권을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폴리마켓 측은, 자사 플랫폼에서 거래되는 각종 이벤트 계약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관할하는 파생상품에 해당하며, 개별 주 정부가 별도 규제를 가하면 전국 시장이 쪼개지고 중복 규제로 혼란이 커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소송은 미국 예측시장 규제의 향방을 가를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 관심이 크다. 연방 규제기관의 우월한 관할권이 인정되면 온체인 예측시장은 보다 일관된 규제 틀 아래 성장할 수 있지만, 반대로 주 정부의 손을 들어줄 경우 각 주별 상이한 규제 리스크가 프로젝트 확산의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과 성장주 사이에서 정체성을 조정하고, 이더리움과 토큰화 자산, 예측시장이 각자의 방향으로 실험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크립토 시장은 점점 더 전통 금융·규제 프레임 안으로 편입되고 있다. 다만 이런 변화가 장기적으로 암호화폐를 ‘새로운 유형의 위험자산’으로 고착시킬지, 혹은 기존 자산군과 다른 차별화된 역할을 부여할지는 아직 시장과 규제 논의에 달려 있다.
